음모가 역병이 되어 퍼졌다.킹덤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조선 시대 배경의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이다.병든 왕을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어둠에 뒤덮인 조선, 기이한 역병에 신음하는 산하.정체 모를 악에 맞서 백성을 구원할 희망은 [보기]
음모가 역병이 되어 퍼졌다.킹덤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조선 시대 배경의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이다.병든 왕을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어둠에 뒤덮인 조선, 기이한 역병에 신음하는 산하.정체 모를 악에 맞서 백성을 구원할 희망은 오직 세자뿐이다.일단 킹덤의 시대상을 정리하면 '임진왜란 같은 전쟁을 겪은 직후 경신대기근 같은 엄청난 기근이 찾아와 백성들은 수도 없이 굶어죽는데 정작 양반들이나 관리들은 구한말 세도정치, 삼정의 문란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부정부패에 빠진데다가, 조선 후기 유학의 변질로 인해 심해진 남녀차별 등 사회적 모순들 역시 시대를 앞서 나타나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인 가상의 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용케 안 망했다.작품 속 배경은 현실의 조선과 다른 대체역사의 조선으로[3], 시즌 1에서 작중 연도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두 번의 전란을 겪었다고 나온다. 시즌2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3에 따르면 3년 전 상주에서 왜군의 전투가 있었다. 통상 역사적으로 언급되는 상주전투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열흘 뒤이고, 상주에서의 전투를 정유재란 종료 시점인 1598년으로 상정해도 극중시점은 1601년 이전으로 한정되게 된다. 이럴 경우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 이전으로, 양란은 통상 말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아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된다. 본편보다 과거 시점을 다루는 아신전이 시기상 왜군의 첫 침공과 재침공 사이를 다루고 있고, 번호부락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여진족들의 공격을 받을 위기를 회피하였으므로, 양란이라 함은 두 번의 왜란을 의미하는 것임을 유추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게, 실제 역사에선 인조반정 이후에나 만들어진 어영청이 시즌 2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4] 또한 조선 전기에는 재산의 상속이나 제사를 아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지내오다가, 양란이 끝난 이후 무너진 신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인식과 함께 적장자 중심의 제도가 차차 세워진다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5], 양란이 끝난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후에 중전의 살해동기는 당시 시대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본 드라마의 조선은 상술한 바와 같이 대체역사의 조선이므로, 극중의 왜란도 실제 임진왜란에 정확하게 대입하기보다는 작가가 임진왜란을 모티브로 한 전쟁 이후 시대를 설정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따라서 정확한 연도를 추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작가가 밝히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계절적 시기는 시즌1에서 '아직 한겨울도 아닌데 얼음이 얼었다.' 고 말하는 걸 보면 소한(양력 1월 5일) 이전으로 추정되며, 시즌2에서 '동지가 지나 낮에도 역병환자들이 활동한다'는 대사를 통해 시즌 1까지는 동지(양력 12월 21~22일) 이전이고 시즌 2는 동지 이후임을 알 수 있다.왜란이 끝난 17세기라는 점. '얼음이 평년보다 일찍 얼고, 작중 인물이 대사를 할 때마다 입김이 나오는 등' 이상 저온 현상이 관측된다는 점, 흉년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것으로 보아 경신대기근 당시의 모습을 참고하지 않았겠냐는 의견도 있다. 특히 경신대기근 당시, 이상저온 현상으로 흉작이 이어지자, 배고픈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기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이 분석에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이 시기엔 조선에 온갖 질병이 돌기도 했다. 또한 킹덤의 작가가 직접 나서 킹덤은 '배고픔'에 관한 이야기라 말하기도 했다.아직 17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의 조선은 실제 역사라면 2세기는 지나야 나올 세도정치 시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원 조씨'라는 가상의 가문이 그 중심이다. 한국에서 세도정치를 한 조씨 가문은 풍양 조씨와 양주 조씨밖에 없다. 에초에 해원이라는 지명 자체가 한국에는 없다. 작중 등장인물의 입에서도 '이씨 위에 조씨'라는 말이 나올 정도. 다만 이 조씨 가문이 과도할 정도로 왕실과 세자를 무시하는 '대역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첫화부터 등장한다. 조씨의 대표인 조학주는 재판도 국왕의 허락도 없이 사람을 막 죽여대고, 세자를 마주친 금군들 역시 아무도 예를 갖추지 않고 세자에게 협박을 가하며 심지어는 칼까지 들이댄다. 세자를 견제하는 외척이 오히려 세자의 권력 강화를 위한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왕권이 철종 이상으로 추락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 한 장면만으로도 확 와닿긴 하지만, 과다하는 느낌 역시 드는 것이다. 일단 세자가 스스로도 말하듯 후궁이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입지가 안 좋은 것 같다.헌종 사후 안동 김씨가 철종을 즉위시킬 수 있었던 건 첫째, 헌종이 후사 없이 죽었고, 둘째 다음 왕을 선택할 수 있는 대왕대비가 자신들 가문인 순원왕후였기 때문이다. 철종 사후엔 이 권한이 신정왕후 조씨에게 넘어가자 고종의 즉위를 막을 수 없었고, 정권도 흥선 대원군에게 넘어갔다. 아무리 위세 떨친 세도정치라도 정권이 바뀌는데도 왕위계승의 법칙을 거슬를 순 없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이나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부왕이 자기 후계를 바꿀 결심을 했기에 가능했고, 세자 시절 입지가 불안했고, 이창의 모티브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이는 광해군도 국왕 선조가 직접 나서서 세자의 입지를 뒤흔든 게 근본적 원인이지, 조선에서 신하들이 왕의 뜻도 없이 세자를 흔든 일은 없다. 심지어 부왕이 대놓고 갈구다 못해 아예 죽여버린 사도세자 조차도 궁 밖에서 행패를 부리고, 숱하게 사람을 죽였음에도 신료들은 감히 말도 쉽게 못 꺼내서 뒤늦게야 영조 귀에 들어갔다. 그 정도로 세자라는 자리는 확고부동한 서열 넘버 2이다. 그런 점에서 킹덤의 해원 조씨는 실제 세도정치를 능가할 만큼의 권력이 과다하게 표현된 게 맞다. 이 정도 권력은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보다는 차라리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에 더 가깝다.양반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부정적인데 산짐승조차 찾기 힘들어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에 잔치를 벌이고, 무기를 드는 것조차 못마땅해 한다. 물론 조선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세자나 상주의 유력자인 안현 대감이 목숨걸고 책임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니, 양반을 일률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관련한 김은희의 인터뷰다만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작중에서 양반들한테 무기를 나눠줄 때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양반한테 무기라뇨!?"라며 불만을 표하는데 무반도 엄연히 양반이라 이다. 물론 양반들중 관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군역 등 역을 치르진 않았으니 이를 생각하고 말한 대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가 그렇듯이 전시 상황에 나서서 공을 세우는 것은 유학적 사상이 주가 되는 조선 사회에서도 명예로운 일이었고 실제로 왜란 당시 의병의 상당수는 지역의 양반이나 명망 높은 선비들이 지역민들을 규합하며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문반이라고 해서 무기와 아예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조선에서 활쏘기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 있던 것은 유명하며 문관들 역시 호신용으로 칼을 구비하거나 수련하기도 했다.[6] 그런데 본작의 양반들은 잘못하면 몰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무기를 들어야 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물론 삼정의 문란 때처럼 부정부패가 만연하단 설정이기 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조선이 전쟁 직후기 때문에 일종의 경각심이 있을 것을 감안하면 약간 어색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기존 사극의 클리셰를 비튼 것도 돋보인다. 세자가 역모에 연루되면 소위 신하라고 하는 간신 또는 간신배들이 음모를 꾸미고 세자와 그 측근이 누명을 벗으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서는 보통 자동승계되므로 아쉬울 게 없을 세자가 사발통문에 직접 수결하는 등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세자가 직접 말하듯 일단 그가 후궁 소생이고, 현재 임신 중인 중전이 아들을 낳는다면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조씨들이 세자를 폐하고 중전이 낳은 아들을 국본으로 올릴 것이 뻔하기에 세자가 선수를 친 것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경종의 경우 세자일 때부터 경종을 보호하던 소론과 연잉군을 밀던 노론의 대결이 있었고, 숙종의 병신처분에 따라 노론이 막강한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비록 숙종이 승하함에 따라 교체는 실패했지만 이후 연잉군 세제 책봉 요구를 강행하는 등의 일들이 있었으니, 작중 세자가 충분히 우려할 만 하다.[닫기]